[여수=한국대학신문 김의진 기자] 올해 대학가에서 주목할 교육계 쟁점 중 하나는 ‘지역혁신 중심 대학지원체계(RISE, 라이즈)’다. ‘라이즈(RISE)’가 내년부터 전국 17개 광역지자체에 도입되면서 대학을 대상으로 했던 기존 정부 재정지원사업들도 재편되기 때문이다. 지자체별로 대학 재정지원 등 사업계획 수립을 이달 중 마무리해야 하는 만큼 지역별로 어떤 차별화한 라이즈 방안이 만들어질지 관심이 한껏 높아질 전망이다.
하지만 일각의 우려는 여전히 남아있다. 라이즈는 지방소멸의 위기를 지역대학 역량을 활용해 막겠다는 게 취지지만, 지역 정주형 인구를 배출하는 데 우위를 보여왔던 지역전문대가 오히려 라이즈 전환 후 역할이 축소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계속 제기된다. 지자체가 첨단·신산업 분야 위주로 집중하거나, 연구개발(R&D)을 위해 주로 거점국립대·대형사립대 중심의 지원책을 수립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에 다수 전문대가, 특히 교육부 ‘고등직업교육거점지구(HiVE, 하이브) 사업’에 참여하는 전문대들이 지자체의 ‘정주 인구 확보’ ‘지역 불평등 해소’ ‘평생·직업교육 활성화’ 등에 도움이 되고자 발 빠르게 움직이는 모양새다. 지역전문대·기초지자체가 컨소시엄을 구축하고 지역사회·산업체와 협업하는 등 하이브(HiVE) 사업을 수행하며 지역 특화 인재를 배출해온 성과를 확산하고, 이를 라이즈 전환 후에도 지속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행보에 여념이 없다.
10일 교육계에 따르면 교육부·한국연구재단 등 교육 당국을 비롯해 지자체에서도 하이브 사업을 수행하는 전문대 성과를 주목하는 분위기다. 이들 교육·행정 당국은 현행 하이브 사업과 향후 도입될 라이즈의 취지·지향점이 결국 같다는 점에서 지자체가 정책을 수립하는 과정에 충분한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분석한다.
전문가들은 지방소멸을 막기 위해선 지역에 정착할 인구를 유치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한데, 이 같은 측면에서 보면 전문대를 활용한 지자체 전략이, 이른바 ‘가성비’ 높은 방안이 될 수 있다고 분석한다. 교육 통계에 따르면 전문대 졸업생의 지역 정주율은 일반대보다 약 10%포인트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방소멸 위기를 완화·해소하는 데 전문대가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증명한 셈이다.
■ 교육·행정 당국 “하이브 성과, 향후 라이즈서도 계속 이어질 수 있어야” = 이날 전남 여수에서는 ‘2023년 하이브 사업 성과 포럼’이 열렸다. 포럼은 하이브사업 발전협의회가 주관했고, 이날부터 11일까지 이틀간 여수 소노캄에서 진행됐다. 사업 3년 차인 올해를 맞이하며 지난해 성과를 공유·확산하는 자리로 마련됐다. 하이브 사업에 참여하는 전국 전문대·지자체 컨소시엄(연합체) 사업단을 비롯해 교육부·한국연구재단·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 등 관계 당국도 함께 자리했다.
이날 포럼에서 참석자들은 내년 하이브가 라이즈로 재원 통합되며 일몰이 예정됐지만, 향후 지자체별로 사업을 응용·확대하는 형태로 재개편해 성과를 지속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교육·행정 당국 관계자들도 이날 “지자체가 하이브 사업에서 전문대 역할 모델의 힌트를 찾을 필요가 있다”며 전문대 의견에 힘을 실어줬다.
노재준 하이브사업 발전협의회장(오산대 부총장)은 “하이브 사업은 인구소멸 방지와 국토 균형 발전에 이바지한다는 측면에서 굉장히 중요하지만, 전문대의 지속 가능성·생존을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사업”이라며 “하이브는 전문대와 지자체가 컨소시엄을 구축해 협력을 꾀한다는 점에서 향후 라이즈를 대비하는 밑거름이 되기에 충분하다”고 강조했다.
노 회장은 이어 “앞으로 다양한 어려움에 직면할 수 있지만 협업으로 공동의 문제를 극복하며 상생할 수 있도록 하이브 사업단이 더욱 중심에 서서 노력해야 할 것”이라며 “지방정부·대학이 교류하며 우수 프로그램을 공유하고 사업 취지 전반을 홍보함으로써 동반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문선영 한국연구재단 대학교육실장도 “올해 어느덧 마지막 연차를 맞이한 하이브 사업이 그간 모두가 힘쓴 덕분에 지자체·전문대·기관 간 협업 성과가 나타나고, 컨소시엄의 수도 50개까지 확대됐다”며 “하이브 사업으로 전문대가 운영한 교육과정도 총 533개에 달하는 등 지역 중장기 계획과 맞물린 지역 수요 기반의 특화 분야 정주형 인재를 양성하는 체계를 구축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문 실장은 이어 “현재 컨소시엄별 전문대·지자체가 협업해 성과를 창출하는 형태는 계속돼야 하고, 가속해야 한다”며 “라이즈 전환을 앞두고 전문대 역할을 더욱 공고히 할 수 있는 계기로 하이브 사업이 되기를 바란다. 이달 1일부로 대학교육실장으로 부임한 만큼 저 또한 교육부·대학 간 가교 역할을 성실히 수행하겠다”고 덧붙였다.
남성희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 회장(대구보건대 총장)은 “임기 중 가장 좋은 일, 가장 잘한 일을 꼽으라면 인구소멸 지역에 지자체·전문대가 컨소시엄을 이루는 하이브 사업을 들 것”이라며 “전문대는 우리나라의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어려운 곳에서 학생들을 위한 일을 하는 교육기관이다. 인구감소, 수도권으로 인구 유출 등 가장 힘든 지역을 보면 우리 전문대가 그곳을, 지역사회를 지킨다는 점을 (교육·지방 당국에서) 알아줬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남 회장은 이어 “하이브 사업 참여대학이 50개까지 늘어난 것처럼 시나브로 132개 전문대 모두가 하이브 사업에 참여하도록 해야겠다고 생각할 찰나 라이즈로 재원이 넘어간다고 한다”며 “다만 라이즈 속에서도 전문대를 위해 (해당 사업이) 계속돼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 하이브 포럼서 “순천만 국제정원박람회 ‘대박’은 지자체·전문대 협력 덕분” = 이날 포럼에서는 하이브 사업을 수행하는 전국 주요 대학들의 우수 성과를 비롯해 하이브 ‘2유형’ 사업으로 알려진 ‘직업전환 교육기관’, 이른바 ‘DX아카데미’ 사례 등 지난 한 해 전문대가 거둔 풍성한 결과물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특히 이 가운데 전문대를 지자체 프로젝트의 핵심 역할로 참여하게 함으로써, 지역사회를 탈바꿈시킨 것을 넘어서 전 세계적인 주목까지 이끈, 이른바 ‘대박 난’ 순천시 사례에 이목이 쏠렸다.
이기정 순천시 문화관광국장은 “순천만 국제정원 박람회가 대성공을 거뒀다는 평가 속에 최근 화려하게 막을 내렸다”며 “원래 입장객 목표였던 800만 명을 넘어서 지난해 10월 900만 명이 집계됐을 때, 순천시민들이 한마음으로 기뻐했던 순간을 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순천시에 따르면 순천만 국제정원 박람회가 성공적인 결과를 거두면서 올해 카타르에서 열릴 ‘국제원예생산자협회’ 총회에서 박람회 운영 노하우를 공유해달라는 요청이 들어왔는가 하면, 사우디아라비아 정부 관계자들이 벤치마킹을 위해 방한, 순천시를 방문하는 등 세계적인 관심이 이어진다.
이기정 국장은 “정부·교육계가 라이즈를 추진하면서 지자체·대학 간 협력이 최근 강조되는 것 같지만, 순천시는 그때(박람회 유치·추진)부터 이미 지자체·대학이 머리를 맞대고 지역사회 성공을 위해 달려가기 시작했다”고 강조했다.
이 국장은 이어 “순천시에 있는 순천제일대는 학교 전체가 하나의 큰 정원이다. 당시 허허벌판에 거대한 정원을 만든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순천제일대가 이 과정에서 큰 역할을 했다. 순천시가 정원 설계에서 도움을 참 많이 받았다”며 “지역의 또 다른 전문대인 청암대도 공무원이 상주할 수 있는 공간 제공 등 행정적으로 지원해 큰 성과의 밑그림을 그리는 데 큰 도움을 줬다”고 설명했다.
그는 “노관규 순천시장은 ‘순천은 대도시를 꿈꾸지고, 따라하지도 않는다’고 늘 강조한다”며 “도시가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제대로 집중하고 투자한다면 온갖 부작용을 만들어낸 수도권 일극 체제의 대한민국 판도가 분명히 바뀔 것이라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전문대는 전문인력을 양성하는 곳이기 때문에 다른 지역을 따라하는 것보단 차별화하는 게 필요하다”며 “순천만 국제정원 박람회 때 그랬듯, 순천시에서 순천제일대·청암대가 역할을 하듯, 다른 지자체에서도 해당 지역전문대의 특성을 살려 잘할 수 있는 사업을 설계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이밖에 이날 포럼에서는 △박병수 강원도립대 산학협력단장의 ‘광역지자체 지원 지역 특화 고등직업교육, 평생·직업교육 추진체계·제도화 방안’ △한지원 두원공대 교수의 ‘라이즈를 위한 지역사회와의 협력’ △유세문 한국영상대 산학협력단장의 ‘하이브 사업 서포터즈 운영 계획’ 등이 발표됐다. 또한 우수 지자체 사례로서 ‘대구 북구청’이, DX 아카데미 우수 사례로 ‘부산과기대’ 등 내용이 소개됐다.
이와 함께 사업 2년 차 분야별 주요 성과로 △지역 특화(강릉영동대·경북보건대·대림대·부산경상대·조선이공대) △지역사회 공헌(계명문화대·김해대·오산대·원광보건대·한국영상대) △일반분야 직업교육(경북전문대·동양미래대·순천제일대·연암대·울산과학대) 등 사례가 발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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